휴대폰이 안 터지는 오지에서 모토캠핑을
하루 더 하려니 답답한 마음에 봉화를
뛰쳐 나오게 되었다. 다음 행선지는
동호회 회원님들과 합류하기로한 삼척
원평해변이었다.
태백과 봉화를 연결해주고 있던
어느 삼거리 휴게소. 아직 체 달아나지
못했던 아침잠을 이곳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
으로 날리게 되었다. 나름 장박을 위해 최대한
줄인건데 짐이 한가득이다. 트렁크도 꽉 차 있는
상태. 배낭 하나에 모두 다 넣을 수도 있는
패킹력과 장비도 갖추고 있지만, 역시
미니멀인 모토캠핑은 픽업만 되면 편의를
우선 시 하여 장비를 타협하는게 맞다.
특히 몸과 닿는 장비들은 부피가 커도
최대한 편하고 좋은 것으로 하는것이
이 중 투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의자/테이블/침낭/매트는 필수!!
병규 동생은 휴대폰이 잘 터지는 곳으로
나와서 그런지 지난 하루간 밀렸던 폰 업무?
를 여지 없이 즐기고 있었다.
오후 늦게 원평해변의 솔밭에 도착하였다.
사이트를 구축하고 멋지게 드리운 이곳의
땅거리를 주어 담는다.
필드가 넓고 팩다운이 쉬었기에 설치한
타프와 텐트의 각이 제대로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이 온 병규 동생은 다음 날 전국적인
비소식으로 인해 미리 철수를 서둘렀고...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모토캠핑 동호회
회원님들이 합류하여 내일 있을 감성
만점의 우천 캠핑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아꼈던 고기를 꺼내들어 준비를 시작한다.
모인 인원이 많지 않았던 만큼 작은 미니
화로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코펠이 밥을 지어본다.
7년 만인가? 그동안은 햇반으로만 연명을
했지만 날이 좀 추워지니 구수한 숭늉 생각에
밥을 올리게 되었다.
맛갈스럽게 구어낸 꽃등심!
지금 보아도 침이 절로 돋는다.
전 날 먹다 남은 소시지도 정성스레
구워 접시에 담았다. 폭찹과 수제 소시지.
딱히 별미는 아니지만 모토캠핑에선 빠지면
꾀나 섭한 메뉴 중 하나가 되겠다.
함께했던 종원형과 태연형님.
썰물 빠지듯 모든 행인들이 종적을 감췄던
원평해변. 해가 떨어지니 제법 한기가 사이트를
휘감기 시작했다. 수평선엔 간간히 넘다드는
오징어잡이 배들만이 소박한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해변가에서 둘러 앉은 남정네들은
미리 챙겨온 맥주로 목을 축이며
불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딱히 안주 없이도
짠내 가득한 바닷공기만으로도 심심한
씹을거리가 되는 듯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웬일로 기상청의 예보가 적중을
하니 막상 서운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천을 대비해 배수로를 파는 등
완벽하게 준비를 했기 때문에 마음 한켠에 저장한
감성을 들먹이며 우중 캠핑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아침은 칼칼한 라면으로
속은 든든히 하였다.
투적투적 내리는 빗소리.
타프에, 그리고 텐트에...
부숴져라 부딪혀 깨지는
빗방울 소리는 내리는 이들에겐
비명일진 몰라도 내겐 오선보에
그려놓은 어떤 선율보다도 듣기가
좋았다. 비가 제때 그치지 않는다면
장비를 말리는데 꾀나 애는 먹겠지만
지금 만큼은 그 어떤 잡념도 챙기기
싫었다.
바닷 바람에 빗줄기가 흩날린다.
함께한 태연형이 평상시 가지고
다니는 그라운드 시트로 측면을
막아 우중 캠핑의 아늑한 감성을 더해주었다.
모토캠핑의 여성 회원님은 식구들
챙긴다고 자동차에 한 짐 가득 담아
오셨는데
역시나 일반 캠퍼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메뉴를 꺼내들어 우리를 놀래케 한다.
비오는 날은 뭐니뭐니 해도 지짐이가
최고인것을... 심금을 울리는 신의 식단인건가?
한쪽에선 모듬 부대찌게를 위한
재료 준비가 한창이었다.
커다란 코펠에 가득 담긴 찌게를
충분히 끓이기엔 우리들이 챙겨온
소형 버너들은 한계가 있었다.
이에 차콜을 듬뿍 피어 타프안의
온기를 더하는 동시에 조리 준비를
완벅히 하게 되었다.
다행이 무거운 조리기구의 무게를
화로가 버텨주었다. 보글보글 찌게가
익어가는 소리, 그리고 지짐이기
구어지는 소리는 비 내리는 정경과
함께 코까지 즐겁게 해주었다.
해물파전엔 계란을 넣어
담백함을 더욱 담았고...
회원님이 챙겨온 진짜 명이나물은
나도 처음 먹어보는 짱아찌? 였는데
그 향과 식감이 아주 톡특했고
맛도 일품이었다. 한 줌에 만원정도
하고 오직 정식 명이 나물은 한 철
울릉도에서만 난다하는 귀한 식재료라
한다.
점점 비가 멎으니 수중기로 가득했던
주변의 시야가 또렷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중 캠핑은 충분히 즐겼으나 복귀를 앞 둔
나에겐 장비를 말리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더구나 날까지 습하고 햇볕은 더더욱
없다보니 아예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저 멀리 해가 올라오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구름속으로 숨어들었다.
복귀 걸음은 화창한 날씨를 예상
했지만, 역시나 완벽한 스케쥴은
일년에 손에 꼽을 정도다. ㅠㅠ
차라리 하루를 더 머물면 내일은
해가 쨍쨍할지 고민을 해본다.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냥이들을
생각하니 발걸음은 쉽게 떨어졌다.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웠기에 아이들의
먹을 것이 걱정되었다. 뭐 어차피 지금
해가 뜬다 해도 장비를 완벽하게 말릴 순
없었기에 곧바로 철수를 준비하였다.
이곳을 벗어나기 전 파이팅이 넘치도록
진한 머그잔에 커피를 담았다. 가끔은
오랜 휴식도 되려 몸을 지치게 만든다.
비몽사몽하니 잠시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태백은 가을 장마라 복귀 길 수중전을
피할순 없었다. 그래도 태백산맥을 내려가
정선으로 들어가니 맑은 하늘이 젖은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말려주었다. 올해 추석의
모토캠핑도 웬지 뜨뜨미지근하게 마지막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 석연치 않았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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